월간바둑

생생현장2/이세돌vs한돌 치수고치기

등록일
2020-02-05
조회수
415

생생현장2/이세돌vs한돌 치수고치기

 “한판 즐기고 갑니다”

- 이세돌, 은퇴기에서 인공지능 ‘한돌’에 1승2패


결과는 모든 사람이 예측한 그대로였지만 ‘수순’이 크게 달랐다. 1승2패, 3점 치수로 마무리될 거라는 바둑 관계자들의 예측은 정확했지만, 이세돌이 ‘두 점’ 치수에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이세돌 태풍이 한반도를 들썩였다. 바디프랜드에서 후원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vs한돌 매치 제1국이 열린 18일엔 취재진 70여 명이 현장에 운집했다.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 때만큼은 아니지만, 예상을 웃도는 관심과 취재 열기였다.

지금까지 한국바둑계에선 ‘은퇴기’를 한 사람이 없었다. 고(故) 조남철 선생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프로기사’직을 유지했고, ‘영원한 국수’ 김인 九단 또한 현직 프로기사다. 정상급 기사 중 단 한 명도 은퇴한 적이 없는 한국바둑계였으므로 은퇴기가 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 관례를 이세돌이 깨뜨렸다. 이미 수 년 전부터 “세계대회 우승 후보가 아니게 되는 날,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던 이세돌은 올해 초 사실상 은퇴선언을 했고, 그 결심을 지난 11월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실현했다. 한국바둑의 간판스타였던 풍운아 이세돌이 25년 프로기사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세돌의 은퇴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건 은퇴 기념 대국의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 ‘국산 알파고’ 한돌이라는 점이었다. 한돌은 NHN에서 야심차게 만든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으로 올해 중신증권배 세계인공지능 대회에서 줴이(절예), 골락시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돌이 호선바둑에선 세계 Top3에 드는 강력한 인공지능인 만큼 실력 면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문제는 접바둑 능력이었다. 갖고 있는 실력만큼 호선바둑과 접바둑 모두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은 접바둑에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돌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 인산인해를 이룬 이세돌vs한돌 1국 취재현장. 말 그대로 취재진으로 ‘산’이 쌓여 ‘인산(人山)’을 만들었다. 알파고 대전 때 이후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바둑 경기 취재를 위해 몰린 일은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있기 어려울 것이다.


AI킬러, 혹은 ‘버그제조기’ 이세돌

또 한 번 78수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얘기도 있고, 그때도 지금도 틀리다는 얘기도 있다. 이세돌vs한돌전 1국의 78수를 따라가 보자.

초반은 쌍방의 기풍 그대로의 전개였다. 이세돌은 네 번째 수로 한돌의 굳힘에 다가섰고 여섯 번째 수로 백의 기착점을 끊어가며 특유의 공격형 바둑을 구사했다. 두 점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선 초반에 싸워야 한다는 게 정석인데, 이것을 충실히 따름과 동시에 본인의 스타일까지 유지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돌이 놓일수록 이세돌의 승리확률은 조금씩 떨어졌다. 한돌의 승률 그래프가 20%대까지 올라온 것은 63수 무렵. 이즈음부터 ‘이세돌 패배’의 그림자가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로기사가 두 점 접바둑에서 인공지능에 패할 때 보이는 흐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세돌의 ‘78수’가 놓였고 한돌은 챌린지매치 4국 때의 알파고로 빙의한 듯 버그에 걸렸다. 축과 장문을 못보고 좌충우돌하던 한돌은 결국 92수 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개전 2시간이 채 안 된 이른 종국이었다.


2국에서 허무하게 패한 후 아쉬워하는 이세돌. 호선만 못한, 한국식으로 하면 오히려 1집 접어주는 조건으로 싸운 이세돌이었으므로 지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이세돌은 국후 “흑번이면 승리 확률이 ‘제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백번으로 두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차마 할 수가 없어 돌을 가렸다고 밝혔다. “그냥 백으로 둔다고 얘기할 걸 그랬어요.” 이세돌의 마지막 소감이었다.


2% 아쉬웠던 ‘돌돌전’

이세돌과 한돌의 대국 전, 치열한 한국랭킹 1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박정환·신진서 九단이 인터뷰에 응했다. 두 점에 이세돌이 7집반을 주는 조건으로 펼쳐지는 1국에 대한 승부 예측은 두 기사 모두 같았는데, ‘한돌이 이긴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두 기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프로기사들과 바둑 관계자들의 의견 또한 같았고, 아마 한돌측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치수고치기’를 표방했지만 전혀 치수가 맞지 않는 현상이 벌어진 건 한돌의 1국 패배 탓이었다.

오청원 시절의 치수고치기에선 호선 다음 ‘선상선’, 그 다음 정선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나름대로 꽤 촘촘한 방식이 있었다. 프로기사 사이의 실력차이가 호선과 정선, 정선과 두 점으로 후딱후딱(?) 넘어가질 리 없었기 때문.

하지만 두 점을 깔고 한돌에 1국을 승리한 이세돌은 오히려 호선보다도 1집 ‘접어주는’ 대국을 펼치게 돼 지켜보는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한국룰로 대국할 경우 호선바둑에서 흑이 6집반을 공제하는데, 이세돌은 한돌에 7집반을 주고 대국했기 때문이다. 치수도 맞지 않았던 데다가 이른 시기에 나온 이세돌의 착각 때문에 바둑은 싱겁게 끝났다.

하루 휴식한 후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진 3국. 이 바둑이 이번 이세돌vs한돌 치수고치기 시리즈 중 그나마 내용적으로 충실했다. 초반 우하귀에서 펼쳐진 수읽기 대결은 많은 바둑 팬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전성기 이세돌이 보여줬던 감동이 그대로 재현됐다.

그럼에도 ‘버그’가 유발되지 않은 한돌은 강했다. 부분 접전에서 조금씩 점수를 잃던 이세돌은 비세에 빠진 후 총공격을 감행했으나 ‘인공지능의 대마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한 후 돌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10년간 세계바둑계를 평정했던 이세돌은 인공지능 한돌과의 은퇴기를 끝으로 바둑계를 떠났다. 짧지만 굵게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세돌의 스토리는 본지에서 3월호부터 ‘특별기획’으로 다뤄진다.      

<취재/이영재 기자>


▲ 매 대국이 끝날 때마다 취재진과 이세돌, 한돌측이 인터뷰로 ‘설전’을 벌였다. 1국에 등장한 ‘버그’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한돌의 아버지 이창율 팀장은 “접바둑은 처음이라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 두 점뿐만 아니라 석 점, 넉 점 바둑도 준비해야 했기에…”라고 말했지만, 준비한 석 점과 넉 점 바둑은 둘 일이 없었다. 


▲ 3국이 끝난 후 이세돌이 한돌과 승부를 펼쳤던 따끈따끈한 바둑판에 사인해 은퇴기 후원사인 바디프랜드의 김상현 대표에게 전달했다. 바디프랜드측은 ‘브레인마사지’ 기능이 탑재된 안마의자를 이세돌에게 답례품으로 증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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