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커버스토리/오청원배 우승한 최정

등록일
2020-02-05
조회수
69
▲ 세계여자바둑 양대 산맥을 장악한 최정 9단.

커버스토리/제2회 오청원배 우승한 최정
최정, 세계여자바둑 양대 산맥 장악


“정말 기뻤어요. 응원해주신 팬 분들, 동료들, 중국에 함께 가서 응원해주신 강명주 단장님과 관계자 분들,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박정상 코치님과 송혜령 권주리 프로를 비롯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요즘 바둑계의 대세는 누가 뭐래도 최정인 듯싶다. 11월초 세계여자바둑 최고 권위의 궁륭산병성배를 우승하며 3연패의 대위업을 달성한 최정 九단이 12월초 중국 푸저우 시에서 열린 오청원배를 거푸 우승하며 단숨에 세계여자대회 2관왕에 우뚝 섰다.
한국기사로는 4강에 홀로 생존했기에 이번 중국 푸저우 시로 가는 출정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더구나 오청원배는 지난해 우승을 목전에 두었다가 결승에서 김채영에게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의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던 바로 그 대회로 중압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즐기고 오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너무 비장할수록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요. 가볍게 떠나야 합니다.”


배낭 하나 덜렁 둘러메고 중국여행을 다녀왔다는 듯한 출정소감이었다. 그렇다. 승부에 연연하고 집착하다 보면 대사(大事)를 그르치기 십상. 최정은 대가(大家)들의 휘호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무심(無心)’의 의미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번 오청원배에서 최정은 준결승전에서 리허를 꺾고 팬들의 바람대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왕청싱 五단. 중국 여자바둑을 호령하던 위즈잉이 잠시 외도(?)한 틈을 타 1인자로 올라선 왕천싱과는 상대전적에서 6승1패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우승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손쉬운 상대는 없어요. 현재 중국 여자바둑 1인자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최정은 오청원배 결승에서 상대전적 11전 전승을 거두던 김채영에게 통한의 2연속 패배를 당하며 최대 왕관을 쓰지 못했다. 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 왕천싱과의 결승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데 너무 편안해 보였습니다. 공원에 가 체조도 하고, 식사 때면 수다도 떨고 도무지 낼 대국하는 선수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어요. 요즘 들어 특히 더 그런데 승부를 떠나 편하게 두는 게 느껴져요. 이번 결승에서도 그랬고. 두 판 모두 위기 없이 편하게 이겼던 것 같습니다.” (결승전 동행한 박정상 코치)


▲ 결승1국 복기 장면. 박정상 코치가 최정 곁에서 복기를 거들고 있다.


센코컵, 우승했더라면 천하통일이었다!

“전혀 아쉽지 않아요. 절 성장하게 해준 고마운 시간입니다.”


센코컵 월드바둑여류최강전마저 품었더라면 완벽한 천하통일을 이룰 뻔했다고 묻자 최정은 이 패배가 마음을 다잡고 바둑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본이 개최하는 센코컵은 초청전 형태의 대회로 우승상금이 1000만엔(한화 1억원)에 달해 욕심나는 대회다. 최정은 지난해 준결승전에서 중국의 위즈잉에게 패해 결승진출에 실패했는데 이번 결승전 상대가 바로 그 위즈잉이었다.

위즈잉에게 또다시 패해 최정에게 슬럼프가 찾아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정반대였다. 패배의 아픔을 금방 털어내더니 이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 패배 뒤 위즈잉과 여섯 차례 만나 모두 승리하며 11승17패(센코컵 결승전 패배 당시)이던 상대전적을 17승17패로 정확히 균형을 맞췄고 국내외 기전에서 종횡무진 ‘최정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  왕천싱은 최정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제2회 오청원배 결승3번기에서 최정이 중국 여자바둑 1인자 왕천싱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우승했다.



2019년 최정의 성적은 어마어마하다. 12월 16일 현재 100국에 딱 1국 모자란 99국을 두어 80승19패로 승률 80.8%를 기록하고 있다. 연말에 하림배 여자국수전 결승 대국이 잡혀 있어 100국 돌파는 이미 예약된 상태고, 이제 관심사는 승률 80%대 유지 여부다. 80%대 승률은 전성기 때의 이창호나 현재 국내랭킹 1, 2위를 다투는 박정환 신진서가 엄청난 한해를 보낼 때 작성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그 엄청난 기록에 도전하고 있으니 최정의 2019년 활약이 대단하다 할밖에.

여자기사를 상대로는 천하무적에 가깝다. 올해 59승4패(승률 93.65%)로 경이적인 승률을 올리고 있다. 특히 국내 여자기사로만 국한하면 44연승 중으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스스로도 신기해요. 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바둑이 많았어요.”


여자기사를 상대로 승률이 90%가 넘는다. 최근 1년 넘게 국내 여자기사에겐 단 한 판도 지지 않았다고 하자 최정은 운이 많이 따랐을 뿐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결승전 대국을 앞두고 오청원 회관에 대국자와 관계자들이 모였다. 정중앙에 녜웨이핑 九단과 린하이펑(왼쪽에서 여덟 번째)·창하오(왼쪽에서 세 번째) 九단의 모습도 보인다.


최정이 남자기사들을 상대로 거둔 성적도 놀랍다. 20승15패로 승률 57.14%를 기록 중이다. 얼마 전까지 60%대를 유지하다가 최근 GS칼텍스배와 2019-20 KB리그에서 이지현(남)과 김지석에게 잇따라 패하면서 60%대 아래로 주저앉긴 했지만 여자기사가 이 정도 승률을 거둔 건 최초이자 최고의 성적이다.

최정은 바둑도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남녀의 신체적 핸디캡을 인정하면서도 “타고난 체력의 차이, 그 외에도 많은 설이 있고 그 말들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도전 의지를 불살랐다. 실제로 최정은 금년 대어를 여러 차례 낚았다. 세계대회에선 구쯔하오와 스웨를, 국내대회에선 참저축은행배와 KB리그에서 강동윤을 두 번 연속 꺾어 실력이 과대포장됐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정도면 그동안 인터뷰에서 ‘남자의 벽을 넘어서고 싶다’고 했는데, 이미 그 벽을 허문 것 아닌가? 되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현답(賢答)이다.


“지금은 누군가를 넘어서자는 생각은 없어요. 진정한 제가 되고자 합니다.”


▲ 이번 결승전엔 박정상 코치 외에도 송혜령·권주리 二단이 동행해 최정 九단을 응원했다.


전설 루이에 다가가는 최정

최정이 얼마나 대단한 기사인지는 여자바둑의 전설로 불렸던 루이나이웨이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루이는 1999년 한국에 건너와 2012년까지 13년 동안 한국기원 소속 기사로 활동하며 통산 684전 432승252패(63.16%)의 성적을 거뒀다(통산 37회 우승. 이중 9회는 세계대회 우승).

최정이 이에 근접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0년 8월 3일 프로 첫 데뷔전을 치른 최정은 2019년 12월 16일 현재 709전 490승219패(69.1%)를 기록하고 있다. 통산 우승에서는 16회(국내대회 10회, 세계대회 5회, 기타 1회)로 아직 차이는 있지만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여자바둑 전설과도 같았던 루이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최정은 “영광”이라며 “루이 사범님이 계시기 때문에 저도 여기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해했다. 루이가 한국에서 기사생활을 하면서 한국 여자기사들의 실력이 하루 다르게 늘어 지금은 한국 여자바둑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최정도 루이를 롤모델로 바둑을 공부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른바 루이 키드다.


▲ 오청원 회관을 찾은 바둑 팬들을 상대로 결승전 바둑을 녜웨이핑 九단이 공개해설했다.


그런 영향을 받은 탓인지 최정의 ‘승리 공식’은 전성기 때의 루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전성기 시절 루이는 포석 감각이 출중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발군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던 건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펀치력이었다. 조훈현 九단을 꺾고 사상 유례없는 국수전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도, 유창혁을 꺾고 맥심커피배를 우승할 때도 루이의 장기가 어김없이 발휘됐다.

지금의 최정이 그렇다. 전성기 시절 루이 못지않은 강력한 수읽기와 파괴력이 느껴진다. 금년 최정이 이룬 업적 중 조금은 가려진 기록이 LG배와 삼성화재배에서 거둔 성적이다. 최정은 한국이 개최하는 두 세계대회 본선 진출을 이룬 첫 주인공이었는데 통합예선과 본선에서 세계챔프 경력이 있는 구쯔하오와 스웨를 완력으로 밀어붙여 승리를 거뒀다. 이 두 번의 사건이 있은 뒤 중국 국가대표팀은 최정을 더 이상 여자기사가 아닌 일류기사로 분류하며 집중 연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시상식에서 우승트로피와 상금보드를 받아든 최정 九단. 우승상금은 50만 위안으로 한화로 8200만원이다.


올 한해 바둑계 스타 중 최정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된 것 같다. 국내외 여자바둑대회 시상식 때면 우승자 이름에 최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골로 등장했다. 어디 그뿐이랴. 남자기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세계대회 본선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리며 남자기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만큼 발군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연말 거행되는 바둑대상 부문별 수상자의 명단에도 최정의 이름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심지어는 최고의 기사를 뽑는 MVP 후보에도 올라있어 박정환 신진서 신민준과도 경합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바둑대상(바둑문화상) MVP에 오른 기사 중 남자기사가 아닌 여자기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 그 벽이 허물어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글/구기호 편집장·사진제공/혁객 우츠차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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