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이사람/하세가와 가나미

등록일
2019-03-21
조회수
279
▲ 60세 이후 바둑을 시작한 하세가와 씨. 사진은 하세가와 씨가 개인 소유의 요트를 운전하는 모습이다.

이사람/하세가와 가나미
영화 같은 인생, 종장은 바둑과 함께


“오늘 아주 특별한 분이 한 분 오십니다. 하세가와 씨라고 여성 분인데 오토바이를 아주 잘 탄다네요. 종주도 하고 그랬대요. 바둑도 아주 좋아하고요.”
“정말요? 혹시 스쿠터로 동네 한 바퀴 종주(?) 한 건 아니죠?”
“에잇, 이 사람이. 그 배우 최민수가 타는 오토바이 있죠? 그런 걸 탄답디다. 동네가 아니라 미국땅을 돌았다나 뭐라나. 어쨌건 아주 기인이에요.”
“이야~ 재밌네요. 나이가 젊나 봐요?”
“젊죠. 이제 70대 초반이니까. 70대 중엔 아직 젊은 편이죠.” 


‘클럽 A7’이 주최하는 아바사(아마바둑사랑회) 국제바둑교류전이 열리는 날, 홍시범 감독이 슬쩍 다가와 정보를 던져준다. 기인(奇人)이라면 홍시범 감독도 빠지지 않은 인물인데 홍 감독이 추천하는 기인이라니. 기자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월척의 냄새였다.

교류전 1국이 끝나고 잠시 비는 시간, 일본에서 온 홍맑은샘 프로가 하세가와 가나미 씨를 소개해주며 흔쾌히 통역을 자청했다. 홍맑은샘 프로는 홍시범 감독의 아들로 현재 일본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와 홍 프로, 하세가와 씨 셋은 좁은 테이블에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인사를 나눴다.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 2019년 3월호 '이사람' 코너의 주인공 하세가와 가나미.


기자: 홍시범 감독님께 소개받았습니다. 오늘 하세가와 씨를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하세가와: 어머나. 제가 이야깃거리가 될지 모르겠네요. 어떤 테마의 인터뷰인 거죠?
기자: 45년생이시라 들었습니다. 그냥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둑 두러 오신 것만 해도 인터뷰 감인데요. 가볍게 오토바이로 도시 한 바퀴 도는 게 취미라고 하셔서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세가와: 아하~ 오토바이 얘길 들으셨군요. 오토바이는 조금 젊을 때 탔습니다. 한 15년쯤 전이니까… 58살쯤이겠네요. 그때 면허를 취득했지요.
기자: 58살에요? 실례지만 그 연세에 면허시험에 합격하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오토바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들어보기로 하고요. 먼저 한-일 바둑교류전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하세가와: 홍맑은샘 사범님의 소개로 이런 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김인국수배 같은 대회를 자주 참가해서 저에게 소개해주신 듯한데, 명단을 보니 너무 쟁쟁하셔서 내가 나가도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웃음) 
기자: 어?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년 김인국수배에서 상을 받기도 하셨죠?
하세가와: 맞습니다. 바둑 잘 둬서 받은 상은 아니고 외국에서 온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고 주더라고요. 아직 73살밖에 안 됐는데요. 올해는 바둑으로 상을 받아볼 생각입니다.

기자: 얼마 전 조치훈 九단의 ‘착각쇼’를 보니까 “1년에 반집씩 까먹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만큼 접어주고(?) 두신 셈이니 상 받을 만한 일이 맞습니다. 바둑 두신 구력도 상당히 오래되셨을 법한데요.
하세가와: 60세 전까지는 바둑을 몰랐습니다. 테니스, 골프, 요트, 오토바이 등 주로 활동적인 취미를 즐겼죠. 어머니와 한 집에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점점 기억을 못하는 걸 보고 머리 쓰는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50대가 되어 브릿지를 시작했지요.

기자: 브릿지라면 카드게임 말씀하시는 거죠? 유럽에서 주로 하는.
하세가와: 맞아요. 브릿지도 정말 좋은 게임이긴 한데 파트너가 넷이 필요한 게 문제더라고요. 다들 너무 진지하게 하니까 웃지도 못하겠고. 그러다 문득 저에게 브릿지를 가르쳐 주던 선생이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상대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얘길 하시더라고요. 저는 바둑을 하나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래도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서 짐짓 바둑을 아는 척 위장(?)하고 두러 갔어요. 그것이 바둑과의 첫 만남이었지요. 



▲ 아바사 한일 국제바둑교류전에 출전한 하세가와 카나미 씨(사진 오른쪽). 승부는 졌지만 즐겁게 바둑 둘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며 내년에도 참사의사를 내비쳤다.


기자: 첫 만남부터 드라마틱(?) 하네요. 대체 바둑을 모르고 어떻게 대국을 하러 가신 건가요?
하세가와: 부리나케 바둑 실력을 ‘급조’하기 시작했죠. 일주일간 나름 바둑 두는 법을 공부해서 갔는데 일주일로는 바둑을 제대로 둘 수가 없더라고요. 선생님 아버지와 9점을 놓고 시작했는데 바둑판에 있는 돌을 모두 다 죽이고 말았답니다.

기자: 선생님 아버지가 많이 실망하셨겠네요.
하세가와: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처음이라 그런 거라고, 바둑상대가 되어 줘서 고맙다고요.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 아버지와 만나 바둑을 배웠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아버지가 저와 대국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대국을 하면 제 돌을 몽땅(?) 잡아버려 속상했어요. 귀에서 두 집이라도 내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죠.(웃음)

기자: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사투였군요.
하세가와: 그렇게 바둑을 시작하고 나니 테니스 친구들도 나서 저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내고 배우는 게 아니다보니 “바보야! 이런 것도 못 살리냐”는 둥 놀림 받는 것으로 값을 치러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지만요.    

기자: 혹독한 값(?)을 치르고 배우셨으니 지금은 기력이 제법 단단하시겠습니다.
하세가와: 정식으로 받은 아마추어 3단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묻지도 않고 단급심사대회 참가신청을 해버렸는데 덜컥 합격해 버린 거지요. 얼떨결에 3단증이 생기자 묘한 책임감이 생기더군요. 실제 실력은 초단 정도 되는데 3단이 되어버리니까 “당신 정말 3단 맞아?” 소리를 피하기 위해 별 수 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렇게 바둑도 많이 두고 유럽콩그레스 등 대회도 다니다보니 바둑 친구가 점점 늘어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계속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즐거운 반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하세가와 씨가 결혼하는 딸에게 직접 만들어 준 책을 홍맑은샘 프로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 딸의 어린시절 사진과 일기가 담긴 이 책은 일본에서 큰 화제가 돼 매체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고. 


하세가와 씨의 이야기는 늪과도 같았다. 70세를 훌쩍 넘었음에도 그녀는 에너지가 넘쳤고 삶은 매순간이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인터뷰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듣던 중 어느새 1국이 모두 끝나 통역을 해주던 홍맑은샘 프로가 대회 진행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하세가와 씨는 자신이 쓴 책이라 말하며 작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책을 펴자 한 여자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딸이었다.

책을 살펴보는 도중 홍맑은샘 프로가 돌아와 책에 대해 물었다. 결혼을 앞둔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해줄까 고민을 하던 하세가와 씨가 딸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사진을 직접 책으로 만들었다고. 떠나는 딸에게 너가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는지의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는 하세가와 씨의 말에 이야기를 듣던 일행은 모두 감동한 눈치였는데, 정작 딸의 반응은 왜 함부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썼냐며 화를 냈다는 반전도 숨어있었다.

기자: 아까 얘기하다 만 오토바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데요. 58세에 면허를 획득하고 큰 오토바이를 장만하셨다고요.    
하세가와: 실은 집 근처에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하면 꼭 그 지역 술을 사오는 겁니다. 1000cc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아주 재밌다데요. 제가 면허를 따면 같이 데려가주겠냐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날로 시험장에 가 면허를 땄지요.

기자: 그때부터 오토바이 투어가 시작된 거로군요.
하세가와: 그 젊은 친구가 은행원이었는데 같이 좀 탈만 해지니 글쎄 전근을 가버리지 뭐예요. 참고로 저는 길치라서 혼자 나가면 집도 못 찾아온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오토바이 클럽을 찾아 나가게 됐죠. 제 계획은 동네 근처를 도는 거였는데, 클럽 활동을 하다보니 1년도 채 되지 않아 북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완주하게 됩디다. 일본 방방곡곡 안 돌아 본 데가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뉴욕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자전거로 뉴욕을 횡단했다고 하더군요. 찍은 사진들도 너무 즐거워보이고요.

기자: 헉, 그렇다면 설마?
하세가와: 오토바이로 뉴욕을 횡단해야겠다 결심했죠. 곧장 미국으로 건너갈 사람을 모집했는데 다들 직장이 있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결국 저를 포함 3명의 여성이 미국으로 가게 됐지요. 한 명은 35살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여자였고, 한 명은 27살의 산부인과 의사였어요. 회사 대표는 직원들에게 2주간 휴가를 냈고 의사는 아예 병원을 접었다더군요.

기자: 다들 보통 각오가 아니었겠네요. 2주간 휴가라면 일정도 꽤나 촉박하게 느껴지는데요.
하세가와: 최대 낼 수 있는 시간이 2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13일 주파 계획을 세웠지요. LA에서 뉴욕을 횡단하는 코스였는데 약 600km를 달렸어요. 관광도 하면서요.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는데 완주하면서 너무 친해졌지요. 계획을 달성하자 회사 대표는 돌아갔고 의사는 그곳이 좋다고 계속 머물렀는데, 저도 친구집에 머물며 함께 있다가 친구가 너무 오래 있는다며 화를 내는 통에 돌아왔습니다.(웃음)


▲ 오토바이를 타고 LA에서 뉴욕까지 600km 거리를 주파한 세 여성. 회사 대표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두 여성과 하세가와 씨는 LA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지만 오토바이 종주를 하며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고 한다.


기자: 말씀해주신 내용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 같습니다. 수많은 취미와 곡절을 지나 지금은 바둑에 매진하고 계시다 들었는데요. 바둑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하세가와: 제 손녀가 3살인데 바둑을 좋아합니다. 저와도 즐겁게 바둑을 두곤 한답니다. 시간을 뛰어넘는 바둑의 위대함이지요. 해보고 싶은 건 영국에 있는 발렌티아 만 아일랜드란 작은 섬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오토바이 레이스에 참가한 뒤 2년에 한 번 열리는 바둑대회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겠죠. 목표랄 건 딱히 없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바둑을 둘 수 있는 지금이 그저 즐겁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요?  


<인터뷰/김정민 기자>  



▲ 바둑 두며 친구 사귀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하세가와 씨는 김인국수배 뿐아니라 유럽바둑콩그레스도 매년 참가하는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수담을 즐기고 있다고. 바둑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를 탐방할 때면 아이들에게 바둑보급도 틈틈이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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