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특집/프로기사 400명 시대

등록일
2019-02-22
조회수
447
▲ ‘변화와 혁신’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1회부터 세계오픈대회로 출범했던 삼성화재배가 2009년부터 64강 상금제를 도입하며 대국료제 폐지와 상금제 개혁의 첫 삽을 떴다.

특집/프로기사 400명 시대

1월 10일 51회 여자입단대회에서 3명의 여자 기사가 탄생하며 국내 프로기사의 수는 총 358명이 됐습니다. 1년 17명의 기사를 선발하고 있는 현 입단제도대로라면 3년 후면 프로기사의 수는 400명을 돌파하게 됩니다.

현재 프로기사는 연금과 퇴직금 제도가 보장된 전문직 대우를 받고 있으며 여전히 입단 여정은 험난합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음표가 떠오릅니다. 과연 머지않은 미래 바둑계는 400명의 프로기사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걸까요?

민감한 주제일 수 있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신예 기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40명의 KB바둑리거를 제외하곤 1년 10판의 대국 기회도 가지기 힘든 상황이며 본인들 차례가 오기 전에 연금과 퇴직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대로 400명 시대를 맞이해도 괜찮은 것인지, 현역 프로기사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프로기사 400명 시대, 이대로 괜찮은가?
 
기억하고 있는 독자 계실지 모르겠다. 대략 20년 전, 그러니까 ‘이창호붐’ 시절 이야기다. 90년대초 이창호가 10대 나이로 스승 조훈현을 꺾고 타이틀을 쟁취하자 전국적으로 바둑신드롬이 일어났다. 한국바둑의 전성기가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최강국이었던 일본의 지위는 나날이 추락했다.

우승, 우승, 또 우승… 10여 년간 한국바둑은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창호가 있는 한 단체전은 불패(不敗)였고 바둑학원은 원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당연히 인재(人材)도 풍년이었다. 세계대회보다 국내기전 예선통과가 더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학생이었던 필자는 어렴풋이 월간『바둑』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일본바둑을 걱정하는 칼럼을 읽은 기억이 있다. 제목은 대략 ‘저물어가는 일본바둑’ 정도였던 것 같다. 한국, 중국에 치여 점차 쇠퇴해가는 일본바둑을 염려하는 글이었다. 당시 한국 프로기사는 150명 정도, 일본은 4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400명이라는 숫자가 그리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칼럼을 상기시켜 주는 숫자, 바둑리거 40명이 10%에 해당되는 숫자, 1000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초(初)에서 중(中)으로 넘어가는 숫자라는 것 정도. 그리고 지금 2019년은 2009년부터 시행된 첫 상금제 개혁이 10년째를 맞이하는 해다.

지금 한국에서 1년에 선발하는 프로기사 수는 17명이다. 지금과 같은 제도를 유지한다면 프로기사의 수는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358명, 3년 후 400명, 9년 후 500명, 600명, 1000명…? 의문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과연 개혁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한국바둑계는 이 숫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본 주제로 넘어가기 앞서 현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짚어보자.

20년 전 불황에 빠졌다던 일본바둑의 1인자는 여전히 자국 타이틀전만으로 연간 15억 이상 벌어들이며 세계 상금랭킹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작년 세계타이틀을 거머쥐며 개인 최고 상금기록을 경신했다는 박정환이 12억850만원을 벌어들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저 부러울 따름. 돌이켜보면 부동산이 하락세라며 강남 땅부자를 걱정해준 격이었다.

한국바둑은 기본적으로 일본바둑의 제도와 시스템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한국바둑의 개척자 고(故) 조남철 선생은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일본기원을 벤치마킹해 한국기원을 창립했고 프로기사의 단위(段位), 수당, 퇴직금, 대국료 제도도 일본의 것을 그대로 도입했다. 따라서 한국바둑의 시스템은 당연히 일본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바둑이 시스템에 메스를 든 이유도 바로 일본 때문이다. 기사 수는 점점 늘어가는데 이대로 방치하단 일본처럼(?) 침체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런 기조는 두 번의 개혁으로 이어지는데, 첫째는 2008년 50년간 유지해온 대국료 제도를 폐지하고 본선 이상의 성적은 낸 기사에게 상금을 몰아주자는 ‘상금제’ 개혁안이다.



▲ 몽백합배, 월드바둑챔피언십 등 세계대회에서 많은 상금을 벌어들인 박정환 九단은 2018년 개인 연간상금 최고기록(12억800만원)을 경신했으나 이야마 유타의 평균 연 상금인 13~15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500년 현대바둑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은 3대 기전(기성, 명인, 본인방)을 필두로 탄탄한 내수를 갖춘 반면, '이창호붐' 시절 급격한 성장을 이룬 한국은 세계대회 성적이 기전유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쟁력 저하는 한국바둑의 침체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당시 상금제 도입을 주장했던 유창혁 九단은 “일본의 제도를 답습한 대국료제는 프로기사 수가 50명 정도일 때 적합한 시스템”이라며 “프로기사 수가 233명(2008년)이 된 현 상황에서 모든 기사에게 분배되는 대국료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제언을 올렸다. 시기도 적절했고 논리도 타당했다. 그의 주장은 2008년 말 열린 기사총회 투표에서 약 76%의 찬성표를 얻으며 개혁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상금제에는 마치 팻감을 쓰고 패를 따내는 것처럼 연계되는 수순이 준비돼 있었는데, 바로 프로기전의 오픈이었다. 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통합오픈 기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마추어에서도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어차피 상금제가 도입되면 본선 이상 올라야만 상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아마추어가 참가해도 무방하다는 논지였다.

시작부터 오픈대회를 선보였던 삼성화재배는 2001년 6회 대회에서 상금제를 시도했으나 강력한 반대로 ‘256강 상금제’라는 애매한 제도를 도입해왔었는데, 투표가 통과되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 64강 상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최초의 통합오픈, 완전 상금제가 첫 발을 뗐다. 그 해 창설된 세계기전 제1회 BC카드배도 상금제에 동참하며 변화에 발을 맞췄다.

하지만 곧이어 시니어 기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대국료가 없어지며 당장 생계유지가 어려워졌으니 대안을 마련해달란 요구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단수당을 개조한 연금 제도다. 만40세 이상 기사들에게 연금이 지급되는 시스템으로, 현재는 입단 26년차부터 15년간 연금이 주어진다. 연금을 받지 못하는 기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형평성 차원에서 40세 이하 기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남자, 여자 마스터스 대회가 열렸으나 몇 회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두 번째 변화는 2011년 입단제도 개혁이다. 1년에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2명씩 선발하던 일반입단대회가 한 번에 무려 7명의 입단자를 뽑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총 입단자 수는 8명에서 12명으로 50% 증가했다. 당시 조직된 입단제도위원회가 제시한 이유는 프로에 실패한 아마추어기사들의 급증에 따른 병목현상 해소와 프로기사 경쟁력 강화였다. 이와 같은 논리로 추후 입단자 수는 더욱 늘어나 현재 17명까지 증가한 상황. 총 프로기사 수는 350명을 넘어섰다.

위 변화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와 같다.

1) 1950년 한국에 바둑 프로제도가 정립되고 50여 년간 일본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
2) 프로기사 수가 증가하며 2008년 대국료제에서 상금제, 기전 오픈(일부)제로 변환 추진.
3) 시니어기사들에 대한 보상차원(대국료제 폐지로 인한)으로 전 기사에게 지급되던 단수당이 만40세 이상 기사들에게 지급되는 복지연금으로 전환, 이후 입단 26년차로 수령조건 변경.
4) 2011년 입단제도 개혁, 입단문호 확대로 4~8명 안팎이던 입단자 수가 12명으로 획기적 증가.
5) 2018년 현재 입단자 수 17명으로 증가. 7년 동안 프로기사 수 250명→ 350명으로 급증.

첫 개혁이 시행된 2009년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대국료제에서 상금제로 전환하고 오픈제를 도입한 것은, 바둑이 하락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200명이 넘어서고도 계속해서 증가할 프로기사 전체의 안정적인 연봉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진짜 승부를 하는 토너먼트 기사들에게 금액을 몰아줌으로써 바둑계 위상을 높이고 스폰서에게 기전 유치의 메리트를 높이는 한편, 바둑을 배우고 있는 유망주들에게 더 큰 희망을 심어주자는 것이 개혁안의 취지요 비전이었다.

입단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경계했던 일본은 오래 전부터 1년에 6명으로 입단자 수를 한정했다. 한때 3배 정도 차이를 보였던 한국과 일본의 프로기사 수는 현재(1월 20일) 기준으로 한국 358명, 일본 431명으로 급격히 좁혀졌다. 이 추세라면 약 7년 후 한국은 일본 기사의 수를 추월하게 된다. 최고단인 九단의 숫자는 한국이 81명, 일본 76명으로 이미 한국이 더 많다. 일본은 여전히 10개가 넘는 기전들이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세계대회 우승상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기사 상금랭킹 1~10위보다 자국 기전 상금이 대부분인 일본기사 1~10위의 상금총액이 더 많다.


▲손근기 프로기사회 회장.


애초 일본처럼 경쟁력이 도태될 것을 경계해 변화를 시도했던 한국바둑. 10년이 지난 2019년, 프로기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먼저 프로기사회 수장 손근기 회장을 찾아가 물었다.

총체적 난국(難局)

“지금 프로 시장은 굉장히 포화상태라고 봐야죠. 며칠 전에도 입단대회가 끝나 3명의 기사가 신규프로로 이름을 올렸는데요. 실상 이 신예 기사들이 둘 수 있는 시합 수가 많질 않아요. 바둑리그에 선발되는 40여 명을 제외하면 대국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바둑리그 선발이 안 되면 아예 공부를 놔버리는 기사들도 많아요.” - 손근기 회장

“입단문호를 17명으로 확대한 것은 경쟁력 제고와 입단에 실패한 실력 있는 아마추어들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함으로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효과가 있나요?” - 기자

“5년 동안 77명이 입단을 했는데요. 조사를 해보니 바둑리그를 밟아 본 기사는 7명에 불과하고요. 퓨처스리그를 포함한다 해도 27명에 그쳤습니다. 50명의 기사가 허공에 뜬 상태지요. 요즘은 일반입단대회를 통해 10대들보다 20대 아마추어 출신들 입단비율이 더 높아요.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어린 기사들이 유입되긴 하지만 당장은 퓨처스리그에 진입하기도 힘든 실력이라… 과거보다 경쟁력이 약해지면 약해졌지 강해졌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 손근기 회장

“연금제도는 어떤가요? 17명씩 입단시켜도 훗날 모든 기사에게 돌아갈 여유가 있나요?”  - 기자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이 많기도 하고요. 은퇴위로금의 경우 고갈 우려로 후 세대는 못 받을 우려가 있어 70%를 현 기준으로 우선 분배한 상태입니다. 연금제도 상황은 비슷하고요.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분배받기 위해선 개편이 불가피합니다.”
 - 손근기 회장

손근기 프로기사회 회장은 지금의 상황이 바둑이라면 확실히 ‘비세’일 거라 말했다. 입단자 수는 늘었지만 경쟁력은 도리어 저하됐고 그들이 둘 수 있는 시합도 과거보다 줄었으며 연금과 퇴직금 제도는 미래세대에겐 불확실한 상황이라 했다. 후배기사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동안 꼭 대안을 찾겠다고 말하는 손 회장의 안색은 어두웠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우선 입단자가 늘었는데 왜 경쟁력이 저하됐는지 궁금했다. 최근 가장 많은 입단자를 배출하고 있는 한종진 바둑도장과 전통의 충암바둑도장을 찾아갔다.


영재 입단? 빛 좋은 개살구

두 도장에는 젊은 20~30대 프로기사 다수가 프로를 지망하는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었고, 아직 면장이 따끈따끈한(?) 신입 기사들도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인터뷰 요청에 기꺼이 응하면서도 민감한 주제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따라서 취재에 응한 모든 기사들의 인터뷰 내용을 익명으로 공개하고자 하오니 양해를 부탁드린다.

“제 세대만 해도 영재라 하면 중1, 중2 때 입단 못하는 게 이상했어요. 지금은 호황기 시절 바둑을 배운 세대 중 프로에 실패한 아마추어가 첩첩히 쌓여 층이 엄청나게 두꺼워졌죠. 잘 두는 아마추어가 너무 많아서 영재라 해도 갑자기 툭 입단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영재 입단제도를 만들긴 했지만 어차피 곧장 리그를 뛰긴 힘들고 국가대표 육성군 훈련도 다 끼리끼리 두기 때문에 특별한 메리트가 없다고 봐요. 이름만 영재 육성이고 정작 시스템이 받쳐주질 못하는 거죠. 빛 좋은 개살구예요.” - 30대 도장사범

“예전엔 입단하면 어느 대회부터 나갈 수 있나 알아보는 설렘이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대회가 없으니까 매년 KB리그나 퓨처스리그 선발 안 되면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최근 입단한 기사들 얘기 들어봐도 KB리그 못 들어가면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더라고요. 어려도 바둑 뉴스 같은 건 다 챙겨보기 때문에 입단 2~3년차부터 진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 20대 후반 도장사범

“프로가 됐을 땐 홀가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엄청난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일단 자격증 하나는 딴 느낌? 결국은 KB리거가 돼야 승부로 도전해 볼 만한 것 같아요. 그런데 경쟁이 너무 세서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퓨처스리그라도 들어가면 좋겠어요.”
 - 남자 신예기사

“남자에 비해 여자는 그래도 조금 나은 것 같아요. 여자리그가 따로 있으니까요. 물론 여자리그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에요.”- 여자 신예기사      

대부분의 도장 사범은 입단자 수가 늘어난 것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목현상이 심화된 나머지 일반입단대회에서는 대부분 20대 아마추어가 선발되고 있는 추세며 영재 입단제도는 시스템이 미비하다고 답했다. 입단문호를 넓혔다고 딱히 프로지망생이 증가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프로가 되더라도 직업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 유망주 학부모들이 바둑을 그만두게 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유명도장에서 사범직을 맡고 있는 한 프로기사는 신예 기사들의 이런 상황이 입단자 숫자 때문이 아니라 은퇴가 없는 프로제도 때문이라 꼬집는다.

“입단자 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실력 있는 아마추어가 많다면 더 늘려도 된다 생각합니다. 문제는 인풋(In-Put)은 있는데 아웃풋(Out-Put)이 없다는 거지요. 지금 바둑계 대부분의 혜택과 일자리는 기성세대들이 누리고 있어요. 정작 프로로서 승부는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최소한 연금으로 신예대회나 2부, 3부 리그를 만들어도 충분히 돌아갈 겁니다. 축구, 야구, 농구 세상 어느 스포츠가 평생 프로생활을 합니까? 승부를 떠나 다른 일을 한다면 은퇴를 하고 그 일에 전념하는 게 맞죠. 물론 그만한 대우는 해줘야 합니다. 명예프로 등 부를 수 있는 호칭을 주고 보급 관련 일을 은퇴자에게 몰아주는 식으로요. 지금은 프로기사로 머물러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은퇴하면 바보 소리 듣지만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저부터 은퇴할 생각입니다.”


▲ IT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찬우 六단은 “이제 입단만 하면 다 먹고 사는 시대는 끝났다. 기존 프로기사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라며 “프로기사도 하나의 자격증이라면 이젠 어려운 입단대회 대신 실력이 강한 인공지능과의 테스트를 통해 자동입단 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라 말했다. 이어 “자격증에 불과한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것도 시대에 뒤처진 악습으로, 아무리 뛰어난 영재나 프로기사라도 초·중·고 기본 교육과정은 제대로 이수하고 성인이 된 후 직업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제언했다.
- 김찬우 六단



은퇴제도 마련해야 vs 자격증인데 왜?

솔직히 프로기사 입에서 먼저 은퇴란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도 그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를 대안이라 말하는 기사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취재에 응한 20여 명 기사 중 절반은 은퇴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체로 20~30대 기사들이 많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위 내용과 유사했고 일관됐다.

“한국바둑계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바다. 프로기사 400명이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아직 꽃피워 보지 못한 신예 기사들이 그 피해를 떠안는 건 불공평하다. 바둑계 악영향을 끼치며 프로기사 전체를 위해서도 옳지 못하다. 호황기를 누리며 그간 혜택을 봤던 선배 기사들이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시니어, 주니어 가를 것 없이 승부에서 떠난 기사라면 모두 해당된다. 은퇴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승부할 것 아니면 당연히 은퇴를 생각하도록 일정 혜택과 명예를 보장해줘야 한다. 각종 복지수당과 제반 비용들은 국가대표와 신예 기사들이 승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 

 - 은퇴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들 의견
반면 변화는 필요하지만 은퇴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고 말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연령대는 40대 이상 기사들이 많았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기사 수가 많고 적고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프로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단순히 은퇴제도가 만들어져 프로기사 수가 줄어든다고 바둑계가 활성화되진 않는다. 이미 프로기사가 생계를 보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단순한 자격증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격증처럼 제도를 더 간소화하고 문호를 열어야 한다. 직업으로서 프로기사는 바둑리거 등 100명 정도면 족하다. 그 외 선수 수명이 다한 기사들은 각자가 먹고 살 길을 찾으면 된다.”



- 프로기사란 자격증이라고 생각하는 기사들 의견
은퇴vs자격증 두 주장을 잘 살펴보면 얼핏 반대 개념 같지만 생각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은퇴를 하고 ‘명예 프로’라 불리느냐, 프로기사의 권위와 혜택을 최소화해서 자격증처럼 유지하느냐의 차이다. 어느 쪽이든 토너먼트 기사들이 빛나도록 밀어주고 승부를 포기한 기사들(명예 프로 포함)에게 보급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는 건 동일하다. 하지만 프로기사 권리 축소와 숫자 증대도 연금제와 동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든 변화를 위해선 연금제도는 정리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기사들은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연금제도”라고 말한다. “많은 기사들이 연금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입장이 다르다. 민감한 문제라 누구도 방울을 달기 위해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었다.



대승적 합의점 찾아야

원래 본 특집은 전적으로 프로제도를 다루려던 게 아니었다. ‘프로기사 400명 시대’를 대비해 토너먼트 프로 외 기사들의 일자리 현황은 어떠한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조명해 400명의 기사가 먹고 살 만한 시장이 바둑계 마련돼 있는지를 취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기사들이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며 원인으로 프로제도와 시스템을 지목했다. 날선 비판과 자성도 뒤따랐다. 한 명 한 명이 열정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갑작스레 산처럼 무거워진 주제 덕분에 정리하는 기자의 머리카락도 한 움큼(?)은 빠졌다.

정리해보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변화와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 입을 모았다. 영재나 신예 기사를 육성할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에서 17명의 기사를 선발하는 현 제도는 문제가 있으며, 근본적인 대안으로 은퇴제도를 마련하거나 선수가 아닌 프로기사는 직업이 아닌 자격증처럼 제도를 간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선 연금제도를 정리하거나 최소한 지금과 다르게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기사들이 이 지점이 가장 걸림돌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소통과 토론을 통해 대승적 합의점을 찾아야 할 부분이다.

10년 전 개혁의 목적은 ‘승부하는 기사들의 위상을 드높여 바둑을 배우는 후학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기사들 대부분이 이 말에 동의했으며 대국료제는 상금제로 변했지만, 돌아보면 과연 본래의 취지대로 흘러왔는지. 많은 기사들이 그 물음에 대답했다. 
바둑판처럼 361칸이 구획돼 있으면 쉬우련만, 바둑계는 크기가 몇 칸인지, 돌이 몇 개가 들어갈 수 있는지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비세가 확실하다면, 수가 나지 않을 만큼 돌이 들어서기 전 판을 흔들어야 역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형세가 나빠지지 않도록 치밀하게 수를 읽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형세판단과 계가가 신에 필적한다는(神算) 프로기사들이 모여 있으니만큼 눈이 번쩍 뜨일 기사회생의 묘수를 찾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취재/김정민 기자>
 
 


▲ “이미 프로기사는 자격증화 되고 있는 추세고 앞으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숫자는 400명이나 500명, 1000명이 되어도 문제될 게 없으나 최소한 토너먼트로 활동하는 기사는 오로지 바둑에만 전념해도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한다. 그래야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출 수 있다. 이상향은 야구 메이저리그처럼 세계인이 모두 어우러진 통합리그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다. 스폰서가 투자하기 좋은 환경과 시스템을 조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한국기원 김영삼 사무총장
주소 : 서울시 성동구 마장로 210 전화 : 02-3407-3800 팩스 : 02-3407-3875 이메일 : webmaster@baduk.or.kr 사업자등록번호 : 206-82-03412 출판 : 1967년 7월 7일 등록(라-906호)
(재)한국기원 대표자: 조상호
ⓒ 2010 ~ 2018 KOREA BADUK ASSOCI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