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반상 라이벌 열전 - 강승민 : 박민규

등록일
2021-05-26
조회수
517
▲왼쪽부터 강승민, 박민규

퀴즈 하나 풀고 시작하자. 지방 대도시서 태어난 그는 만 6살 때 바둑을 처음 배웠다. 곧바로 소질이 상당하다는 칭찬이 쏟아졌고, 이후 동네 바둑교실과 인근 기원을 평정했다. 그는 주변의 격려와 부러움 속에 서울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소속은 충암초등학교로 바뀌었고, 바둑 공부의 거점으로 택한 곳은 양천대일 도장이었다. 충암중학교를 거쳐 동양공고 1학년 때 프로 관문을 통과했다. 여기서 그는 누구일까.


싱크로율 100%…닮은꼴 평생 친구
정답은 복수(複數)다. 해당되는 사람이 1명 아닌 2명이란 얘기다. 답안지에 강승민으로 쓴 사람, 박민규라고 쓴 사람 둘 다 합격이다. 30 평생(정확히는 만 27년) 같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바타처럼 100% 싱크로율을 공유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 하나 있긴 하다. 박민규는 광주, 강승민은 부산에서 성장해 서울로 진출했다.


두 꼬마가 역사적 상견례를 가진 것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0살 때였다. 한상수배였던가? 가물가물하다. 도원결의(桃園結義) 세리머니는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평생의 지기(知己)이자 라이벌을 만났다는 걸 한눈에 직감한다. 아직 우승 실력은 못 되던 시절이었고 맞대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둘은 어린이 바둑계 천하를 양분하기 시작했다. 박민규는 이창호배 조남철배 최강부서 우승했고 전국체전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강승민은 이붕배 단군배 고양시장배 한바연리그 등을 석권했다. 나현 이원영 이지현 등 선배 고수들 틈을 비집고 종종 정상에 오르는 이변도 만들었다.
첫 만남 이듬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양천대일 도장 한 식구가 됐다. 그날 첫 대화를 나눴다.
“내가 승민이보다 한 6개월쯤 일찍 자리잡은 ‘전입 선배’여서 먼저 말을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귀여운 생김새란 생각을 했다.”(박민규)
“잘 지내자고 화답하고 곧 친해졌다. 민규는 스포츠형 머리 스타일,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자리잡은 쌍가마가 인상적이었다.”(강승민)
그것이 그 뒤로도 6년 동안이나 같은 기숙사에서 함께 뒹굴며 동고동락한 출발점이었음은 당사자들도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부추기면서 라이벌 관계 형성
그냥 서로 장난치며 놀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됐다. 주변에서 자꾸 ‘라이벌’이라며 경쟁심을 자극한 것이다.
“동갑인 데다 막상막하의 성적을 보인 것이 죄라면 죄였다. 같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승민이와 둘 때면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박민규)
“같이 지방 출신 유학생이다 보니 출신지 체면도 걸려있어 많은 부담을 느끼며 두었다.”(강승민)
바둑 스타일은 대조적이었다. 당시 이들을 지도한 사범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규는 깊은 수읽기를 바탕으로 한 힘바둑이다. 속기에 강하다. 한 자리에서 7, 8개의 기보를 놓아볼 정도로 수를 빨리 본다. 건성으로 돌만 옮겨놓는 것 같아 기보를 보지 않고 다시 놓아보게 했더니 다 기억하고 있더라. 어릴 때부터 집중력이 대단했다.”(이용수 八단)
“승민이는 행마가 날렵하고 감각이 뛰어난 바둑을 구사했다. 당시 양천대일엔 입단을 눈앞에 둔 강자들만 30여 명이 득실댈 정도로 강했다. 그 틈에서 형들을 잘 이겨내지 못하던 승민이에게 10초 바둑으로 붙여보니까 승률의 확 올라가더라(강승민은 극단적 장고파로 알려져 있다). 감각과 함께 감춰진 속기 재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옥득진 八단)


도장 리그 성적도 막상막하였다. 강승민의 극단적인 선실리 후타개 전법에 맞서 박민규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상대 대마를 잡으러 다니는 패턴이었다. 이런 초식으로 박민규는 선배 형들을 곧잘 이겼지만, 속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경솔함 때문에 하위권 상대에게도 종종 패점을 기록했다. 반면 강승민은 하위 랭커들을 확실히 학살하면서 안정적 승률을 유지했다.
양천대일 도장은 김희용 원장의 호랑이 운영 방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체형으로나 험상궂은(?) 표정으로 보거나 복싱도장 원장 간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인데, 인성과 정신력 강화를 무기로 숱한 바둑계 미래 인재들을 길러낸 조련사다.
두 꼬마는 김원장이 내리는 불호령의 단골손님이었다. 박민규는 빠른 손이 저지르는 경솔끼 때문에, 강승민은 빨래나 설거지 순번을 빼먹고 ‘뺀질거리다’ 적발돼 자주 혼났다.
“그때는 기합 받는 게 우리들의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나쁜 습관을 고치고 성장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강자에 강한 강승민. 2020-2021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한국물가정보의 주장 신민준을 불계로 누르고 셀트리온 팀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도장은 오목교에 있었다. 도장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까지 가려면 용산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두 소년은 용산역 근처 길거리 매점에서 만두 소시지 떡볶이 등을 사서 나눠먹으며 우정을 키웠다. 계산은 누가 했을까. 가위바위보로 가렸단다. 승부사들이 쩨쩨하게 웬 가위바위보?
“아, 도장에선 가끔 1000원씩 걸고 10초짜리 내기바둑을 두기도 했어요. 그걸로 간식 비용에 썼죠.”(박민규).
프로 타이틀 천원전의 출범 전 비밀이 이제야 풀렸다.


입단 직후 강승민 호조…박민규는 연애 빠져
단짝으로 어울리면서도 경쟁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앞에 다가온 입단대회가 둘의 어깨를 짓눌렀다. 바둑 지망생들에게 이보다 더 큰 과제가 또 있으랴. 내색은 안 했지만 누가 먼저 입단하느냐를 놓고 둘 모두 서로를 견제했다.
입단 테이프를 먼저 끊은 쪽은 강승민이었다. 박민규의 회상.
“둘이 서로 맞대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탈락하고 시무룩해 있을 때 승민이 입단 소식이 들려왔다. 나를 아마추어에 남겨놓고 먼저 프로가 되다니. 충격이 컸고 크나큰 자극이 됐다. 축하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박민규도 프로 면장을 받았다.


프로에 닻을 내린 뒤 강승민의 활약이 특히 돋보였다. 입단 이듬해 국제대회인 삼성화재배 본선에 오른데 이어 한국바둑리그 정규 선수로 지명됐다. 2013년엔 제4회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 선수로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및 2016년 삼성화재배, 2017년 LG배를 포함하면 메이저 국제대회 출전만 4번에 이르며 그 중 2번은 16강까지 올랐다. 신예의 무서운 질주였다.
박민규로선 얼마나 부러웠을까. “부러워 할 틈이 없었어요. 그 무렵 저는 몇 년째 연애에 빠져 있었거든요(ㅎㅎ).”
아, 그렇다면 강승민이 오히려 박민규를 부러워하던 시기였나. 아무튼 둘 모두 화려한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박민규도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했다. 2014년 세계 메이저 대회인 제2회 백령배에 나가 1회전을 통과, 32강에 들었다. 2016년엔 일본 주최 국제단체전인 오카게배에 국가대표로 출전, 한국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두 기사 모두 국내 무대에서도 각종 기전 본선에 잇달아 진출했고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한국바둑리그에서 둘의 활약이 돋보였다. 박민규는 2015년과 2016년 시즌 소속팀 티브로드 우승 팀 멤버였다. 2017~2018년엔 SK엔크린에서 뛰는 등 단골 바둑리거로 활약했다. 2015년 바둑리그 때는 신인상도 꿰찼다. 강승민은 2017년 킥스가 우승할 때 정규리그 9승 7패, 포스트시즌 4승 1패의 놀라운 성적으로 우수상을 품에 안았다. 3월 말 끝난 올해 바둑리그에선 챔프 결정전 1, 3국에서 결승점을 뽑는 MVP급 활약을 보였다. 셀트리온을 첫 우승으로 이끈 1등 공신이었다.




▲20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으로 신인상을 거머쥔 박민규.


박민규 제대 후 무서운 연승 행진…더 화끈해진 경쟁
프로 진출 후 둘의 활약상을 비교하자면 강승민이 우세하다. 둘 간의 맞대결 성적 또한 4판을 두어 강승민이 모두 이겼다. 2012년 첫 대결이 일반 기전(올레배)이었고, 2013년 및 2014년은 락스타 및 퓨쳐스리그, 2018년엔 바둑리그서 붙은 성적이다. 그런데 박민규는 화끈한 반전(反轉)을 준비하고 있었다. 올들어 1월 중순 이후 약 2개월간 갑자기 딴 사람이 된 듯 무려 23연승(3월 31일 현재)을 질주한 것이다. 신진서조차 13연승서 멈췄는데, 이거 실화 맞나?
“초일류들은 거의 빠진 프로기사협회 리그서 둔 바둑이 대부분이라 별로 내세울 게 못 된다”는 게 박민규의 겸양. 진짜 그런지 강승민의 얘기를 들어보자.
“민규 정말이지 대단해요. 갓 제대한 제대병이, 군대 기간 공백을 딛고 스물 몇 판을 전승하다니. 질투가 날 만도 한데 하도 대단해서 박수부터 나와요.”
강승민은 군대 갔다 왔나? 2년 전 기사회 축구 모임에서 뛰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군 면제로 이어졌다.
박민규의 ‘벼락출세 비급()’의 정체는 아직 자신도 모른다. 인공지능? 많이 의존하지만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인터넷에 들어가 고수들과 매달 약 100판 정도를 소화하고, 그 기보를 AI로 심층 분석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고 했다. 최근의 활약에 힘입어 박민규의 랭킹은 2월 41위에서 3월 30위, 4월 26위로 15계단 뛰었다. 19위인 강승민과는 7계단 차이다. 두 기사 모두 역대 최고 랭킹을 달리는 중이다.

“승민이와 알고 지낸 지 17년 됐네요. 요즘도 같은 연구실(박정환 연구실)에 함께 나가요. 매주 2~3번은 보고 지내죠. 승민아, 그 동안 내가 4판 모두 패했지만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다. 이제는 한 판도 안 져줄 거니까 각오해라.”(박민규)
“네가 데이트할 때 나를 초대해 네 여자 친구를 소개해준 적이 있었지. 셋이서 식사하면서 너로부터 연애학 강의를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네가 날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승부에선 내가 네 뒤를 쫓아가는 일은 안 생길 거야. 우리 건강하게 선의의 경쟁을 계속해 가자.”(강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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