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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9단 프로필 사진 |
반상 라이벌 열전④ 박지은 VS 조혜연
■글 _ 이홍렬(조선일보 바둑전문기자 겸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관전필자)
입단 및 프로 초년병 시절
1997년 4월 조혜연이 먼저 입단의 코를 뚫었다. 만 11세 10개월. 역대 최연소 3위였다. 박지은의 입단은 7개월 뒤인 97년 11월 만 14세 때 이뤄졌다. 연구생 1조에 오른 뒤 2조로 떨어지지 않고 2~3번을 잔류한 끝에 ‘급제’했다. 이때 입단을 못했을 경우 박지은은 연구생 입단대회 사상 첫 여성으로 출전케 돼 있었다. 입단은 시간문제였다는 뜻이다.
두 꼬마 여기사의 브랜드 가치는 가을 밤하늘 별빛처럼 빛났다. ‘11살 입단’은 상당한 화제였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무게감은 ‘연구생 1조 출신’ 쪽으로 더 쏠리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조혜연이 먼저 치고나갔다. 입단 3년차이던 99년 중학생의 몸으로 세계대회서 준우승했다. 제1회 흥창배. 루이나이웨이에 1대 2로 역전패했지만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해가 바뀌고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이번엔 박지은이 크게 용틀임했다. 제1회 여류명인전 결승서 이영신을 2대 1로 꺾고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윤영선 이영신 쌍두체제 시대가 무너지는 신호탄이었다. 조혜연의 국제대회 준우승, 박지은의 첫 타이틀 획득은 서로에게 깊은 자극제로 작용했다.
(박지은) “나는 다양한 연구회에 가입해 동년배 기사들과 어울린 반면 혜연이는 소소회 등에도 안 나와 노는 물이 서로 달랐다. 조금씩 혜연이란 꼬마 고수의 존재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혜연) “내가 흥창배 결승에 올라갈 무렵 언니의 결연한 다짐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언니는 이듬해 바로 여류명인전 우승과 흥창배 준우승을 수확하더라.”
루이나이웨이의 등장
루이나이웨이가 1999년 한국에 정착했다. 이때만 해도 철녀(鐵女)란 별명의 이 중국 출신 여성기사가 2012년까지 13년이나 한국에 머물며 국내외 여성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루이의 존재는 박지은 조혜연에겐 태풍이 아니라 광풍이었다.
세계 혼성 메이저 여성 첫 4강(제1회 잉창치배) 경력의 루이는 한국에 닻을 내리자마자 여성 타이틀 독식에 나섰다. 최대의 ‘희생자‘는 조혜연이었다. 죽죽 성장 중이던 조혜연을 루이가 번번이 가로막았다. 여류국수전서 둘은 99년 6회~2007년 12회까지 7년 연속 결승서 맞붙었는데 조혜연이 우승한 것은 2번뿐이었다. 여류 명인전서도 8번 결승을 펼쳐 7번 루이가 승리했다. 조혜연의 루이 상대전적 18승 37패는 박지은의 루이 상대전적 10승 16패와 비교된다. 조혜연이 메이저 개인전 우승 5회에 그치고 준우승이 15회에 이르는 것도 루이와 무관하지 않다.
두 사람의 다승 경쟁은 언제나 화제였다. 100승 고지는 박지은이 먼저 발을 디뎠지만 200승, 300승, 400승 고지엔 조혜연이 먼저 올랐다. 박지은이 500승 고지에 올라섰던 2015년 1월 27일 조혜연은 아직 491승이었다. 600승 고지의 주인은 다시 또 조혜연으로 바뀌었다. 2019년 8월 28일, 박지은이 아직 589승일 때였다. 둘은 바둑대상(大賞) 여자기사상을 놓고도 3회씩 분할(조혜연 2003·2004·2005년, 박지은 2007·2008·2011년) 수상했다. 九단 승단은 박지은이 2008년, 조혜연은 2010년 달성했다.
“부럽고 존경하는 선배와 후배 사이”
(박지은) “프로가 된 후 매스컴에서 우리 둘 관계를 라이벌로 계속 부각하는 바람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실력 면에서 혜연이가 나보다 우위였다. 혜연이가 국제대회를 안 나가는 바람에 내게 많은 기회가 왔던 셈이다.”
(조혜연) “10대, 20대 시절 내가 국제대회에 나갔더라면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종종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국제무대서 언니가 보여준 카리스마를 보면 국내에선 내게 양보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박지은) “내가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혜연이 개인을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천적이라는 느낌에 힘들 때면 운동으로 풀었다.”
(조혜연) “지은 언니를 넘어야만 루이 사범님을 만날 수 있기에 어린 시절 결사적으로 두었다. 언니가 루이 사범님을 너무 잘 이겨서, 그 방법을 배우겠다고 언니 기보를 연구하기도 했다.”
(박지은) “종교로 인한 불참 등 혜연이가 보여준 신념이 나로선 신기했다.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보급에도 나서는 등 다방면의 재능을 보여준 혜연이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혜연이와 (김)은지가 둔다면 나도 모르게 혜연이를 응원하게 된다.”(웃음)
(조혜연) “한국 여자바둑이 이만큼 자리잡은 데는 지은 언니의 존재가 매우 컸다. 언니가 앞으로도 바둑 두면서 더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지은 언니에게 이기고 싶다. 언니는 승부나 인생 모든 면에서 내게 항상 긴장감을 주는 멋진 동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