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기자(記者) 방담(放談)/ 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등록일
2020-10-27
조회수
451
직원들에게 “분명히 마우스 클릭을 했다”며 상황 설명을 하고 있는 박정환 九단.


빙산은 거대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장을 누비는 기자의 입을 통해 숨겨진 뒷이야기를 심도 있게 조명해보는 코너 기자방담. 생동감 넘치는 뒷담화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달의 참석 기자
□ 안성문 KB리그 전문기자, 경향신문 엄민용 기자,
 한게임바둑 한창규 기자,
 GS칼텍스배 이용복 관전기자,
 사이버오로 박주성 기자, 김수광 기자,
 타이젬 정연주 기자
 본지 차영구 편집장, 김정민 기자
□ 정리:김정민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열린 ‘바둑삼국지’ 농심신라면배. 홀로 생존한 박정환 九단은 12국에서 맞이한 중국 판팅위 九단에게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마우스 클릭이 안 먹히며 ‘시간패’가 발생하는 바람에 대국장은 초유의 소동이 벌어졌는데… 
 
○…에헤~ 붙지 마시라니까. 방역수칙 몰라요? 저 짝에 떨어져서 앉으시라고요. 마스크도 똑바로 하시고. ‘턱스크’ 안 돼요~
●…거 요구사항도 많네. 이럴 거면 기자방담은 왜 소집했냐? 코로나 끝난 다음에나 부르지.

○…어떻게 다음에 합니까. 농심신라면배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데. 독자분들이 사건의 전말과 뒷이야기를 얼마나 궁금해 하시겠어요.

○…아, 박정환 마우스 클릭 사건? 나 그때 현장에 없어서 잘 몰라. 누가 리얼하게 설명 좀 해줘 봐.

●…때는 8월 20일, 농심신라면배 본선12국 박정환 vs 판팅위 대국에서 갑작스레 박정환이 시간패를 당한 사건이었죠. 바둑은 박정환(백)의 필승지세였고요. 느닷없는 시간패에 박정환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분명 시간 안에 착수했다”라고 항의했고 심판진은 바둑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판독’에 들어갔습니다. 영상을 본 심판진은 박정환이 시간 내 ‘클릭’을 한 것을 확인한 후 시간패가 아닌 ‘기계적 결함’을 주장하며 대국 재개를 요청했는데요. 일본은 기계적 결함에 동의했지만 중국이 이를 거부, 결국 중단 후 20분을 넘겨 ‘3국 만장일치가 아닐 시 재대국’ 한다는 규칙에 의해 결국 다음 날 재대국이 치러지게 된 거죠.    

○…박정환이 시간 내에 착수 한 건 확실한 거야? 어떻게 확인한 거야?

●…온라인대국은 모든 판을 실시간으로 찍어 각국에 송출하고 있잖아요. 김수장 심판과 관계자들이 모여 화면을 돌려봤는데 초읽기 ‘7, 8’ 쯤에서 박정환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달칵”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클릭해도 돌이 찍히지 않자 그 뒤로 계속 “달칵 달칵 달칵…” 마우스 소리와 함께 시간패 음성이 들렸고요. 바둑TV에서 계속 그 영상 틀어줬는데 안 보고 뭐하셨어요? 

○…난 박정환이 많이 이겼길래 끝난 줄 알고 당구 채널로 돌렸지~ 그런 재밌는 게 있었을 줄 누가 알았나… 쩝.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그날 현장에 계셨던 걸로 아는데, 당사자인 박정환의 반응은 어땠나요? 거의 끝나다시피 했던 판에서 사고가 났으니 심기가 편치 않았을 텐데.

○…영상 봤으면 분노의 클릭질(?)을 봤을 거 아냐. 시간패 음성이 나왔을 때 벌떡 일어나 “착점이 되질 않는다”며 황당해 했지. 판독을 기다리는 동안엔 거의 의자에 누워있다시피 하더라고. 화장실도 계속 들락날락 하고.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거지. 보다 못한 직원이 아예 눕기 편한 의자로 바꿔주더라.  

●…판팅위는 시간승이 뜨자 “엥?”하는 표정을 짓더니 바로 집에 가려다 다시 불려와 마찬가지로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죠. “시간승인데 왜 기다려?” 란 표정으로.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건 확실해요.  

○…자, 이제 다 지나갔으니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분명 클릭을 했는데 화면에 찍히지 않고 시간패가 뜬 오묘~한 사건이 대체 왜 일어난 거야? 원인이 있을 거 아냐.

●…일단 공식적으로는 대회를 주관한 한국기원이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사과를 한 상황인데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사실상 ‘원인불명’이기 때문이에요. 이번 농심신라배 온라인대국은 사이버오로의 프로그램과 서버를 통해 대국이 이뤄졌는데요. 정황이나 국후 테스트 결과 ‘기계적 결함’이 사이버오로의 프로그램이나 서버 문제일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판명났거든요.

○…그럼 왜 클릭이 안 먹힌 거야? 정확하진 않아도 추측 정도는 해봤을 거 아냐.

●…일단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첫 번째는 마우스의 결함. 짧은 순간 마우스의 자체적 결함이나 노트북과의 접촉 문제를 의심해 볼 수 있죠. 거의 확률적으로 천재지변에 가깝긴 하지만.

○…두 번째는?

●…신구(新舊) 프로그램의 충돌입니다. 대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할 시 전용 프로그램이 따로 있거든요. 일반 사이버오로 대국실이랑 다른. 그런데 듣기로 중국에서는 대회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전용 프로그램으로 대국했고요. 이 다른 프로그램이 충돌해 순간 클릭이 안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엥?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국했는데 그 전까진 문제가 없었단 말이야?

●…희한하게도 그렇다네요. 일본과의 대국은 제대로 된 대회용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미위팅과 대국부터는 한국은 신 프로그램, 중국은 구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게 확인됐어요. 물론 이것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유력한 용의자(?)인 건 확실하죠.

○…다음 날 재대국에서도 갑자기 30분 정도 중단되지 않았나? 그땐 왜 그런 거야?

●…아무래도 전날 대형 사고가 나다 보니 노트북과 마우스를 다 새 것으로 교체했는데요. 그러다보니 깔려 있던 신 프로그램이 지워져 중국과 같은 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었데요. 담당직원이 구 프로그램으로 대국이 진행되고 있는 걸 발견하고 중국에 연락을 취했는데 중국은 애초 신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때 안 거죠. 그래서 합의하에 대국을 중단시키고 다시 재대국하게 된 거고요. 

○…솔직히 영상 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 박정환이 분명 착수할 곳에 마우스를 올려놓고 시간 전 클릭을 여러 차례 하는 모습을. 일본도 수긍하는 뉘앙스였고. 오직 중국 화쉐밍 단장, 이 사람이 능청맞게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간패라고 우기는 바람에 이어두지 않고 재대국 한 거잖아. 뻔한 수작 아냐? 그럴 거면 왜 심판이 있고 판독을 하는 거야? 진짜 화딱지가 나서. 

●…글쎄요~ 입장이 바뀌었으면 우리도 무조건 시간승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듣기로 화쉐밍 단장이 칭찬 받긴커녕 오히려 시간승을 재대국으로 인정해줬다고 중국 네티즌들에게 엄청 욕먹었다던데. 재대국 정도면 한국에 나쁘지 않은 타협으로 봐야죠. 

○…그나저나 다음 날 더블헤더는 좀 심한 거 아녀요? 이기면 곧장 바로 한 판을 더 둬야 하는데 박정환에게 불리한 조치 아닙니까? 한국 대회인데 홈 어드밴티지는 없을지언정 공평하게 진행해야죠.

●…그게 말이죠. 다음 날 두면 안 되냐고 의견을 제시한 게 박정환이래요. 그런데 정작 판팅위한테 물어보자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왔기 때문에 잘 곳이 없다”지 뭐예요. 판팅위 입장에선 이기든 지든 어차피 한 판으로 끝나니 숙박은 생각도 안 했던 거죠. 좋아할 줄 알았던 중국 측에서 속행을 원하자 자국 선수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 싶었던 한국기원은 판팅위에게 “대회장 근처 최고급 호텔에서 숙식을 지원해주겠다”고 딜을 했고 판팅위가 이를 받아들이며 재대국은 이튿날로  미뤄지게 된 겁니다.


▲다 진 바둑이라 해야 할까 이긴 바둑이라 해야 할까. 불리한 바둑이  시간승으로 뒤집어졌으나 다시 재대국으로 결론 난 상황에서 판팅위 九단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 속사정이 있는 진 몰랐네. 오히려 박정환이 대국 연기를 요청했을 줄이야. 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무승부가 되자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나보네.

●…야~ 너는 천원 걸린 내기바둑도 취재 가야된다고 무승부 하자니까 악착같이 다 두고 가야 된다고 붙잡는 바람에 펑크 낸 적도 있잖아. 저건 국가대항전인데 오죽하겠냐. 당일 뒀으면 혈압이 올라서 몇 수 못 두고 불계패 당했을 거야.

○…판팅위가 한여름에도 전날과 같은 옷을 입고 나오길래 대회 도중 옷을 안 갈아입는 루틴이 있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거였군요. 판팅위 입장에서도 황당했겠어요.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다시 대국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래도 판팅위는 99% 졌던 바둑이니 딱히 손해 볼 거 없지만 박정환 입장에선 얼마나 짜증났겠냐. 다음 날 이겨서 연승을 이어 간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온라인이어서 그나마 심리적 동요가 적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더블헤더로 이어졌던 셰얼하오에게도 이기며 최종국까지 올라갔을 땐 진짜 전율이 일더라고요.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어게인 상하이대첩’이 재현되는 거 아닌가 가슴이 뛰기도 하고. 

●…최종국 커제랑 둘 때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바둑 기자들 다 모였잖아요. 심지어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었죠. 비도 억수로 내리고. 대국실로 가다 IT담당자를 만났는데 행여 벼락 때문에 대국이 또 중단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더군요. 전기가 끊기면 자가발전으로 대체되는 것까지 꼼꼼하게 다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더라고요.

○…5연승으로 대미를 장식했다면 그야말로 영웅의 탄생이었는데… 그놈의 반집이 뭔지… 크흑. 생각할수록 아쉽네, 아쉬워.  

●…5억짜리 반집이었죠. 끝까지 엎치락뒤치락 했을 만큼 치열한 승부였고요. 결과는 너무나 아쉽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박수쳐 줘야죠. 4연승 상대 한 명 한 명이 세계대회 우승자들이니까요. 

○…올해 신진서가 큰 도약을 보여줬으니 내년은 박정환과의 콜라보를 기대해 볼 만하겠네. 설마 내년에도 농심배를 온라인으로 치르는 건 아니겠지? 바둑은 뭐니뭐니해도 바둑판을 맞대고 둬야 제 맛인 것 같아. 온라인은 승부호흡이 느껴지지 않아 영 흥이 안 난단 말이지. 

●…내년이면 코로나도 진정되고 백신도 나올 테니 승부의 숨결이 담긴 대국을 지켜볼 수 있겠죠. 내년엔 기필코 한국이 우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며 기자방담,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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