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프로의 맛집/박정환 九단 편

등록일
2020-08-24
조회수
719
新코너 프로의 맛집 첫 번째 편의 주인공 박정환 九단.

프로의 맛집 / 박정환 九단 편
제1화  약수동 금돼지식당


 


- 박정환 九단 편


“첫 시작은 누구로 할 건가요?”

편집장님의 물음에 고민에 빠졌다. 십여 년 만에 재개한 ‘맛집 코너’다. 시작을 알릴 상징적인 기사가 필요했다.

한창 물오른 신진서 九단인가, 부동의 여자최강 최정 九단인가. 돌아온 레전드 조훈현 국수? 아니야, 조 국수는 지난달 표지를 장식했잖아. 그러다 문득 한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올해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바로 직전 중국에서 열렸던 하세배 마지막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대화였다.


“우승 축하드려요~ 커버도 여러 번 나오셔서 이제 인터뷰 소재도 떨어졌는데… 그냥 저랑 맛집이나 가서 ‘먹방’ 한편 찍는 게 어때요?”
“아, 괜찮은 거 같아요. 좋습니다.”
“진짜죠? 제가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조만간이 어느덧 다섯 달을 넘어서고 있었다. 당시 커제에게 완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손에 쥐고 기분으로 공수표(?)를 남발했을 수도 있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여기저기 축하주를 받은 터라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박정환 九단에게 서둘러 문자를 날렸다. 다행히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나보다. 대답은 “Yes”였다.


▲ ‘한 쌈’ 준비 중인 박정환 九단.


BTS도 다녀간 ‘인싸’ 맛집

평일 12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약수역 2번 출구에서 박정환 九단을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박 九단은 필자와 인사한 뒤 앞장서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그가 말한 맛집이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금돼지식당’이었다. 이름에서부터 맛집의 풍미가 느껴졌다.

12시부터 오픈인데 10분 전인데도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 손님이 줄지어 서있다. 기자가 조금 일찍 자리를 잡아놓은 탓에 12시가 되자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했다. 카메라 장비를 놓고 사진을 편하게 찍기 위해 구석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자: 첫 회를 장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중국에서 했던 약속을 잊어버리셨으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습니다.
박정환: 저야말로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맛집 탐방 같은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기자: 저랑 상의할 때 후보 식당이 여러 곳 있었는데 이곳 금돼지식당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박정환: 제가 고기를 좋아해서요. 특히 삼겹살을 가장 자주 먹는 것 같아요. 금돼지식당은 삼겹살이 진짜 맛있거든요. 드셔보시면 아실 거예요.
기자: 흐흐, 기대가 됩니다. 보통 고기집이 저녁 장사일 텐데 점심에도 자리가 꽉 찼네요? 유명한 맛집인가 봅니다.
박정환: 항상 사람이 많긴 해요. 저녁에는 웨이팅이 적어도 30분 이상 되거든요. 예약도 단체밖에 안 돼서 저녁에 먹으려면 일찍 와서 줄 서고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오늘 약속을 점심에  잡은 거랍니다.^^


약수동에 위치한 금돼지식당은 삼겹살 마니아들에게 제법 알려진 유명한 맛집이었다. 2016년 오픈했는데 1층만 사용했던 식당 터가 4년 만에 2층, 3층까지 확장될 만큼 인기가 좋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애용하고 BTS(방탄소년단)가 다녀가 화제가 됐다고 한다. ‘인싸’들의 맛집이다.

식당 외벽은 네모난 하얀 타일로 장식돼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금돼지식당’ 아니랄까봐 식당 이름은 건물 중앙 금색으로 큼지막하게 박아 넣었다. 내부는 짙은 갈색 나무 인테리어에 은색 테이블이 깔끔하게 세팅돼 있어 빈티지에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메뉴판에서 본삼겹살과 눈꽃목살을 주문하자 곧 직원이 와서 연탄불을 넣고 집게로 고기를 구워줬다. 박정환 九단은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적당히 구워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직원은 노릇노릇해진 고기를 뒤집으며 본삼겹은 뼈에 붙어 있는 가장 맛있는 부위며 눈꽃목살은 마블링이 눈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 설명했다. 먼저 삼겹살을 한 입 베어 물자 두툼한 살점과 쫄깃한 지방층이 어우러져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 안 가득 전해져 왔다.   



▲ 上. 금돼지식당의 메인메뉴인 뼈와 함께 나오는 본삼겹살. 下. 고기가 나오면 숙련된 직원이 알맞게 구워 적당한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준다. 고기 굽는데 자신이 없다는 박정환 九단은 이 서비스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기자: 우와~ 맛이 장난 아니네요. 저도 여기저기서 삼겹살 좀 먹어본 편이지만 괜히 ‘금돼지’가 아닌데요?
박정환: 기자님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저는 본삼겹의 쫀득쫀득한 느낌이 특히 좋은 것 같아요. 소금에 찍어먹으면 정말 고소~해요.
기자: 중국에서 하세배 우승턱으로 소고기를 사주셔서 소를 좋아하시나 했는데 돼지에 일가견이 있으신 줄 미처 몰랐네요. 문앞에서 보니까 ‘미쉐린 가이드 2020’에 선정된 맛집이더라고요?
박정환: 그건 저도 처음 알았네요. 사실 소도 좋아하는데 자주 먹긴 부담스럽잖아요. 삼겹살이 마음 편하게 먹기 좋아서 주로 즐기는 것 같아요. 족발도 좋아하는 편이고요.
기자: 요즘 근황은 좀 어떠세요? 코로나19 때문에 대국 수가 많이 줄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정환: 일단 중국에 자주 안 가는 건 좋아요. 지금쯤이면 세계대회와 중국리그로 한창 바쁠 시기거든요. 대부분의 대회가 인터넷으로 두니까 편한 점도 있고요. 확실히 예전보단 많이 한가해진 거 같아요. 
기자: 덕분에 제가 박 九단과 함께 맛집 탐방도 하고 그런 거 아닙니까. 과거 인터넷바둑사이트 ‘죽돌이’로 유명했었는데요. 인터넷 대회가 진행되면 박 九단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는 느낌인데요.
박정환: 저만 ‘죽돌이’가 아니라서요.(웃음) 신진서, 변상일 선수도 거의 저만큼 인터넷대국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인터넷대국이 저에게 도움이 되는진 의문이지만 평소 거의 안 두는 기사들은 좀 낯설어하더라고요. 마우스미스도 나오고요.
기자: 대표적으로 김지석 九단이 인터넷대국을 전혀 안 하는 기사로 알려져 있죠. 그 영향인지 4월 이후 김 九단의 성적도 3승6패로 부진하고요. 아, 눈꽃목살은 젓갈에 찍어먹는 건가요?
박정환: 삼겹살은 소금, 목살은 젓갈이 여기 정석이에요. 아까 직원분이 설명하셨는데 못 들으셨어요?
기자: 사진 찍느라.(ㅠㅠ) 정말 젓갈에 찍어먹으니 신세계네요… 짭조름한 젓갈이 하얀 지방을 감싸 안는 느낌? 괜히 눈꽃 목살이 아니었군요.
박정환: 하하, 역시 기자답게 표현력이 좋으시네요. 삼겹살 1인분 더 시켜도 되죠? 오늘따라 본삼겹살이 맛있네요.
기자: 좋죠~ 점심에 먹는 삼겹살과 콜라가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그나저나 요즘 한가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시간 보내세요? 취미 생활을 즐기시나요?
박정환: 음, 바둑 외엔 운동 정도? 헬스장에 가거나 동네 한 바퀴 돌곤 해요. 딱히 하는 건 없는 것 같네요.
기자: 정말 바둑 말고 딱히 취미가 없으신가 보네요. 바둑이 그렇게 좋으세요? 승부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박정환: 지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긴 하죠. 그런데 이기면 또 그만큼 좋아요. 특히 우승하거나 하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아요. 이기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요.
기자: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선 이겨야 하니 결국 공부가 답이라는 거군요. 그럼 특히 기억에 남는 승부들이 있을까요? 이를테면 이 패배는 정말 삼겹살도 안 넘어갈 만큼 아팠다거나.
박정환: 아무래도 응씨배죠. 저에게는 그때 패배가 가장 아픈 기억인 것 같아요.
기자: 판팅위와의 결승… 말씀하시는 거겠죠? 당시 모두가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나네요. 판팅위는 일류라기보다 신예에 가까웠으니까요.
박정환: 꼭 판팅위 판이라기보단 두 번 다 아쉬운 기억인 것 같아요. 준우승만 두 번했으니까요. 탕웨이싱에게 졌을 때도 그렇고… 응씨배는 저랑 안 맞나 봐요.(ㅠㅠ)
기자: 술이 없으니 여기 콜라라도 한잔 받으세요.(ㅠㅠ)



양보해줄 때가 됐지요^^

콜라로 ‘짠’을 하고 안주(?)를 둘러보니 어느덧 추가로 주문했던 삼겹살도 몇 점 남아있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스쳐가는 휴가처럼, 맛집의 음식도 젓가락질 몇 번에 동이 나고 말았다. 첫 맛집 탐방의 결과는 제법 성공적인 듯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고기를 입에 털어 넣고 김치찌개 한 술 떠먹자 목에 남은 기름기가 대번에 증발했다. 맛있게 식사를 했으니 독자님들이 궁금해 할 만한 질문 하나는 던져야 하지 않겠나. 최근 박정환 九단에게 가장 골치 아픈 존재, 신진서 九단에 대해서.


기자: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게요. 신진서 九단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박정환: 너무 노골적인 질문 아닌가요.(웃음) 최근 쏘팔코사놀 결승에서 3-0으로 졌는데 기세가 정말 무섭더라고요. 바둑도 정말 잘 두고… 확실히 상승세인 것 같아요.
기자: 과거 조훈현-이창호 사제가 전쟁을 벌일 때 사실 조 九단은 이미 40대였고 이세돌 九단이 랭킹1위에 올랐을 때 이창호 九단은 전성기 끝물이었죠. 지금 상황이 재밌는 이유는 현재 랭킹1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박정환 九단과 신진서 九단이 둘 다 한창인 20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얼마 전 용성전 결승에서 다시 리턴매치가 확정됐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팝콘 물고 관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밌거든요.  
박정환: 신진서 九단이 원래도 강했지만 올해 상반기에 특히 컨디션이 최상인 것 같아요. 저는 근래 멘탈적으로 좋은 편이 아니어서 바둑 팬분들을 더 즐겁게 못해드렸네요. 이번 결승도 그렇고 빨리 컨디션을 회복해 재밌는 승부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컨디션이 회복되길 벼르고 있단 말로 들리는군요… 이번 콘셉트는 복수혈전인가요? 
박정환: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이번처럼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자신은 있어요.
기자: 박 九단이 보는 신진서의 강점이 뭔가요?
박정환: 수읽기야 원래 정평이 나 있고, 요즘 형세판단이랑 감각이 좋아진 것 같아요. 특히 형세판단이랑 계가가 정확해지면서 실력도 한층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기자: 선전포고는 아니더라도 이번 리턴매치 전 신진서 九단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박정환: 음, 이전에는 제가 많이 이겼는데 올해는 많이 졌네요. 역시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지난 결승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결승은 저도 쉽게 물러설 생각은 없어서 5-5 승부를 예상하고요. 최근 저에게 많이 이겼으니… 이제 양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네요.(^^)
기자: 잔잔하면서도 뼈가 단단히 심어져 있네요.(ㅎㅎ) 중국 얘기도 잠깐 해볼까요? 신진서 九단이 중국 기사 딩하오와 왕싱하오 둘이 장차 한국바둑에 위협이 될 거라 말해서 화제가 됐는데 박 九단의 생각은 어떠세요?
박정환: 요즘 중국 신예 기사들은 다 잘 둬서요. 모두 다 위협이 되지만 저도 한 명 눈여겨 보고 있는 선수가 있어요. 인터넷으로 대국해 본 적 있는데 재주가 출중한 것 같더라고요. 천하오신 선수라고, 아직 많이 유명하진 않은데요. 성장하면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기자: 천하오신이요? 저도 처음 들어보는데 기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국 선수 중엔 유망한 선수가 있을까요?
박정환: 문민종 선수가 실력도 있고 가능성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도 잘 두는 기사들이 많지만 중국이 워낙 층이 두터워서 앞으론 더 분발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어느덧 김치찌개도 바닥이 드러났네요. 첫 맛집으로 선정하신 약수동 ‘금돼지 식당’에 대한 점수와 평가를 남겨주신다면요?
박정환: 음, 별 다섯 개가 만점이면 4.5개 주고 싶어요. 고기도 맛있고 적절하게 구워주는 서비스도 좋아서요. 삼겹살을 좋아하는 바둑 팬 여러분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과 목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정환: 당장은 농심신라면배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일본팀 주장 이야마 유타 九단과 중국팀 강자들이 워낙 많이 남아 우승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한판 한판 가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세계대회들이 연기돼서 일단 국내에서 신진서 선수와 많이 두게 되는 것 같은데, 저도 기대가 되고 재밌는 승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월간『바둑』 맛집 코너 첫 회에 불러주셔서 영광이고 앞으로 많은 기사들이 동참해 좋은 맛집 소개해주길 기대하겠습니다.
기자: 처음이라 엔딩이 살짝 어색한데 같이 파이팅이나 해볼까요? 박정환 九단의 농심신라면배 선전을 기원하며 하나, 둘, 셋! (함께) 파이팅!


<인터뷰/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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