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갑조리그 상하이팀 선수단 회식장면. 가장 왼쪽이 판윈뤄 八단.
반면 판윈뤄는 리광배 준우승, 신인왕전 준우승, 천원전 준우승, 위부부동산배 준우승 등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세계대회에서는 삼성화재배 4강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동갑내기 미위팅과 판팅위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판윈뤄의 심적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갑조리그 상하이팀의 류스전(劉世振) 감독은 “내가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상하이팀을 맡으면서 가장 행운이었던 일은 판윈뤄를 다른 팀에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상하이팀의 어떤 선수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판윈뤄가 주장을 맡은 지난해 같은 경우 갑조리그 잔류에 대한 염려가 전혀 없었다. 상하이팀은 평균적인 실력을 갖춘 팀인데 큰 자리가 비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는 동료 기사들의 애도 글이 올라왔다.
판윈뤄와 같은 상하이 팀원인 후야오위(胡耀宇) 八단은 “판윈뤄가 농심신라면배 우승컵을 중국에 안겼다”고 회고하며 장문의 추모 글을 올렸다.
탕웨이싱(唐韋星) 九단은 “LG배 예선 때 나랑 같은 방을 쓰면서 함께 게임을 하고 놀았던 일이 생각난다. 이렇게 다시 볼 수 없을 줄이야…”라고 애도했다.
커제 九단은 자신의 웨이보에 “그는 어릴 때부터 이미 젊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사 중 한명이었다. 최근 2년 사이 기력도 많이 발전했다. 갑조리그 경쟁 환경이 아주 치열한데 출전 첫해부터 50%의 승률을 거뒀다”고 회고했다. 7월 5일 오후 커제는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웨이보에 “오늘부터 무기한 웨이보를 중단한다. 지금까지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일본 기사들도 자신의 SNS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셰이민(謝依旻)은 “믿기지 않으며, 편히 잠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후지사와 리나(藤澤里菜)는 “12살 때 중국에 바둑 두러 갔을 때 판윈뤄를 처음 봤는데 기력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토론을 해 줘 아주 기뻤다. 믿기지가 않는다. 명복을 빈다”라고 말했다.
한 일본 바둑팬은 판윈뤄가 2019년 감은(感恩)배에서 시바노 도라마루(芝野虎丸)와 둔 기보를 놓아 본 사진을 SNS에 올려 판윈뤄를 추모했다.
판윈뤄는 ‘북해의 아침’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사망하기 이틀 전인 6월 30일에도 판윈뤄는 인터넷으로 커제 九단과 대국을 했다. 당시 판윈뤄는 이미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7월 2일 전까지 그는 이미 5일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잤다.
당일 오전,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갔지만 특별한 이상 증세는 발견되지 않아 가족들은 다소 안심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 문을 잠그고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을 눈치 챘지만 이미 판윈뤄는 투신해 짧은 삶을 놓은 후였다.
소식을 접한 상하이기원은 상하이팀 감독 류스전 등을 병원으로 보내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한 삶을 놓은 젊은 후배에게 조문하고 작별을 고했다.
판윈뤄는 사람 됨됨이가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라 말이 적고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최근 인터넷 훈련 위주의 환경에서 그는 바둑판을 통한 동료들과의 교류도 부족했다. 판윈뤄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을 안 가족들은 그를 데리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족들은 적시에 상하이기원과 국가대표팀 책임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못 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국가대표팀이 자주 모여 훈련할 기회가 없었고 대국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진행됐다. 기사들이 모두 집에서 인터넷 훈련을 하다 보니 서로 교류할 기회가 없어, 이런 상황이 판윈뤄의 병세를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일찍이 부모와 함께 베이징(北京)의 도장에 가서 바둑을 배운 판윈뤄의 생활은 안정되긴 했지만 단조로웠다. 점심은 중국기원에서 도보로 6∼7분 거리에 있는 집에서 먹었다. 집밥과 고향의 맛이 습관이 돼 있어서다.
천원전 결승에 올라 통리(同里)에서 식사를 할 때 일화 한토막.
판윈뤄는 샤오롱바오(小籠包)를 주문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가 북방 만두의 피가 얇고 속이 많아 남방 것과 달리 맛있다며 추천했다. 하지만 판윈뤄는 “저는 샤오롱바오를 좋아하고 상하이 요리를 좋아한다"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모두의 기억 속에 판윈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예의 바르고 무슨 일을 하든 깊이 생각하며, 상하이 요리를 즐겨 먹고,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축구 경기를 즐겨 봤다. 틈나는 대로 엄마, 아빠 세 식구와 여행도 자주 다녔다.
판윈뤄의 죽음을 접한 베이징락공장(北京樂工場) CEO인 양러타오(楊樂濤)는 시나바둑(新浪棋牌)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바둑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바둑계는 경기 환경이나 기사들의 수입, 경기방식이나 규칙을 개선한다든지 돌아봐야 한다. 반집 승부는 너무 잔혹하다. 국수들이 대국에 참가해 20∼30만 위안의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것을 보는데, 1000만 위안이 넘는 PGA골프 우승 상금과 비교하면 정말 비애감이 든다. 커제는 이런 대국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장기적인 운동이라는 것이다. 40대는 물론 50대에도 우승하는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이 싹쓸이 하지 않는다”라며 바둑에서도 골프와 같은 시스템 도입을 건의했다.
등재 시기도 앞당겨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