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바둑

이사람/단편선 「화점」 출간한 오민혁 작가

등록일
2020-04-24
조회수
276
인기 웹툰 [화점]을 출간한 작가 오민혁.

이사람1/단편선 「화점」 출간한 오민혁 작가  
 
바둑
성숙한 세계로 나아가는 19로의 통로
인기 웹툰 「화점」 작가 오민혁이 말하는 바둑의 아름다움


바깥에선 칭찬이 자자한데 정작 안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있다. 바로 웹툰 「화점」이다. 화점(花點)은 바둑판 속 찍혀 있는 둥근 점을 뜻한다. 완전한 바둑용어다. 심지어 주인공도 프로기사다. 「미생」과 마찬가지로 바둑을 소재로 한 웹툰인데, 단편이라 그런지 바둑동네까지 전파되지 못했다. 평점 10점 만점에 9.97. 1000명 중 997명은 만점을 줬다. 단편만화가 이렇게 화제가 된 것은 「화점」이 최초였다. 


인기를 끌던 웹툰 「화점」은 올 2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1쇄는 출간 하자마자 매진. 어떻게 알았는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먼저 기사가 떴다. 명색이 바둑만화인데 ‘역끝내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곧장 전화를 걸어 오민혁 작가와 약속을 잡았다. 

- 반갑습니다, 오 작가님. 무서운(?) 시국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젊으니까요. 기자님이 마스크를 쓰고 와주셔서 조금 안심했습니다.”


- 「화점」이란 제목이 인상 깊은데요.
“그림을 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한 제목이에요. 내용 중 바둑판에 빗물이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꽃이 피어나는 ‘화점’과 빗방울이 퍼지는 모양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고.”


- 화점에 대한 표현이 바둑 고수 냄새가 물씬 납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바둑은 전혀 모릅니다.” 


- 에? 바둑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둑 소재의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바둑은 둘 줄 몰랐지만 바둑에 관심은 있었어요. 그림과 바둑, 둘 다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잖아요? 흑돌 백돌이 하나씩 놓여지는 모습이 바둑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꼭 바둑으로 만화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 바둑을 모르면 그리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바둑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어요.(웃음) 만화 속에 등장하는 바둑 내용이 말이 안 된다고요. 사실 스토리에 바둑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데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바둑을 배워서 다시 그려야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 바둑동네가 그쪽으로 꽤 예민합니다. 본 잡지도 프로기사에게 해설 받은 내용이 틀렸다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거든요. 
“사실 저도 배우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주위 바둑만화 그리시는 분들도 기원에 바둑 배우러 다녔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좀 알아봤는데, 시골동네라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기회가 되면 꼭 배워보고 싶습니다.” 

▲ 「화점」 본문 中. 책 속에는 ‘화점’뿐 아니라 ‘달리와 실바도르’ ‘아이스크림’ ‘룰렛’ 등 오민혁 작가 특유의 감성이 담긴 
단편만화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 그럼에도 인기가 상당했다고요.
“주위에선 다 재밌다고만 하니 진짜 재밌는 건지 감이 안 왔어요. 그래서 디시인사이드란 사이트에 독자가 많다길래 한번 올려봤는데, 조회수가 몇 십만이 찍히더라고요. 좀 있으니까 네이버 웹툰에서 연락이 왔어요. 「화점」을 업데이트 해달라고요. 국내 최고 사이트에서도 올라가고 좋은 평점들이 달리니까 그제야 화점이란 작품이 나쁘지 않구나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 ‘화점’에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을까요? 바둑 소재 웹툰으로 가장 유명한 ‘미생(未生)’이라거나.
“미생도 재밌게 보긴 했는데 영감을 받거나 한 건 아니에요. 평소 기회가 생기면 바둑으로 만화를 그려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찾아온 거죠. 군대 입소하는 친구를 차로 바래다주는데 비가 오고 있었어요.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차창을 보니 빗방울이 흘러내려 꼭 바둑판 같더라고요. 그곳에 빗방울이 톡톡 튀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다 영감을 얻은 거죠.” 


- 내용 중 제자가 스승의 옛집에 들렀다 떨어지는 빗방울과 바둑을 두는 장면 말이군요.
“맞아요. 스승과 제자의 콘셉트는 조훈현-이창호 사제 이야기를 듣고 떠올렸어요. 스승이 제자를 집에 들이는 ‘내(內)제자’라는 제도가 바둑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신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뭐랄까, 대단히 한국적인 시골의 정취? 어려서 스승과 한 집에서 공부했던 제자가 훗날 스승의 집에 가서 느낄 감정선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옛 스승의 집 처마 밑으로 흐르는 빗물을 사이에 두고 죽은 스승과 하염없이 대국에 몰두하는 제자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빗물처럼 눈물이 키보드에 똑똑 떨어졌다는 댓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오민혁 작가의 ‘감정선’은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통렬히 전달됐다. 바둑을 두며, 인생을 살며 한번쯤 떠올렸던 물음에 돌직구를 꽂아 넣었다. 오 작가에게 바둑은 훌륭한 매개체였다. 아름답고 감성적이었으며 삶의 굴곡이 담겨 있었다. 바둑을 둘 몰랐지만 바둑을 이해하고 있었다. 



- 원래 전공이 그림 그리는 분야였는지.
“아니요. 공고를 나와 20살에 일본 공대로 유학을 갔어요.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정보디자인 학과에 진학했는데 배워보니 그것도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 뒀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너무 대중적인 콘텐츠더라고요. 만화에 흥미가 생겨 전역 후 만화창작과에 들어갔는데, 배우는 건 재밌어도 희한하게 학점이 안 나와요. 결국 제적이 되더라고요. 재밌는 추억이었죠.”


- 돌고 돌아 만화를 만난 걸 보면 그림 그리는 게 적성이었나 봅니다.
“바깥에서 노는 것보단 혼자 상상하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이 작은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고민하곤 했죠. 영화는 거창하고, 소설은 와닿지 않고. 일본에서의 경험과 웹툰 산업의 발전이 용기를 줬어요. 만화라면 제가 상상하는 세계를 봐 줄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죠.” 


- 작가님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란?
“성숙한 세계, 입체적인 세계입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미숙한 단계에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거든요. 미숙한 단계에선 서로의 단면만 봅니다. 그래서 이해를 못하고 다툼이 생기는 거죠. 성숙한 단계란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이해하는 겁니다. 완벽하진 못하더라고 서로의 본질을 읽으려는 노력, 그게 성숙한 세계고 만화를 통해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 ‘화점’에도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나요?
“그렇죠. 주인공은 미숙한 상태에서 관계를 평면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에게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하고 낡은 관계들은 쳐내려 하죠. 그런데 문득 스승의 집에 가게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과거의 자신을 보며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 앞으로도 바둑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실 생각이 있는지.

“얼마든지요. 바둑을 배워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윤태호 작가님 ‘미생’에서 표지에 바둑을 먼저 그리고 인물들을 바둑의 흐름대로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저도 나름 ‘화점’에 빗대봤지만 더 깊게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더 좋은 소재로 바둑 팬들을 위한 만화를 그려보고 싶네요.”


- 마지막으로 ‘화점’을 읽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비록 ‘바알못’이지만 이 작품에서 바둑을 승패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는 통로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수 한수를 통해 겉으로 하지 못했던 내면의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화점’을 통해 관계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바둑에 대해 저와 성숙한 복기를 나눠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인터뷰/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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